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광화문/경복궁한의원/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후기

카테고리 없음

by JDHan 2024. 2. 26. 10:17

본문

안녕하세요.

경복궁 1번출구 진단한의원 이정화 원장입니다.

오늘은 짤막한 영화 후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3년 3월에 개봉했습니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전작 <쓰리 빌보드>를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충격을 받았는데요.

최근 5년동안 본 영화들 중에 제일 재밌었습니다.

미국 남부 시골 마을이라는 배경이 신선했어요.

기대를 품고 같은 감독의 최근작

<이니셰린의 밴시>을 봤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아일랜드 작은 섬마을 젊은 주인공과 할아버지가

매일 몇 시간씩 맥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절친입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말하죠.

나는 바이올린 작곡을 시작할 거다. 내 인생에 더 큰 의미를 남기고 싶다.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니 이제부터 내게 말 걸지 마라.

주인공은 일방적인 이 절교 선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그러는지 묻는데요.

이에 할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말을 합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뒤로 가기)

경복궁한의원

니가 나에게 말을 걸 때마다

내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겠다.

...?

듣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기겁하며

주인공한테 말 걸지 말라고 만류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침묵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난데없이 차단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소통을 시도하는데요.

할아버지는 진짜로 자기 손가락을 잘라서 집어던지고 갑니다...

('저걸 빨리 얼음통에 넣은 다음 할아버지를 붙잡아

배에 태우고 육지로 가서 접합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 뒤부터는 또 손가락 자를까봐

'말 걸지 마!' 외치면서

계속 조마조마하며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어이 없는 발상과 극단적인 설정이

좋은 연기+연출과 만나니

독특함 코믹함 씁쓸함을

크레이프처럼 층층이 품은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 쌉싸름함이 재미있어요.

말 거는 건 상대방인데

왜 자기 손가락을 자를까요?

이 의문은 영화가 끝나도 남아 있는데요.

'사실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에 필수적인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거다'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해석이 그럴듯합니다.

나는 재능이 없어서 작곡을 못하는 게 아니고 니가 나한테 자꾸 말을 거니까 내 손가락을 자를 수밖에 없고, 손가락이 없어서 작곡을 못한다라고 핑계대기 위해서 손가락을 자른다...

근데 재능이 있고 없고가 흑백처럼 나뉘어지나요...? 바이올린 연주하면서 할아버지 즐거워 보이시던데요. 역사에 남을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으니 그 목표에는 많이 부족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으나 석연치는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둘 중 하나로 뚜렷하게 나뉠 텐데요.

주인공 청년에게 이입하거나

할아버지에게 이입하거나요.

영화를 다 보면 두 사람의 입장 모두 이해하게 되지만

누구에게 이입하느냐는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동력이구요.

극본을 쓴 감독은 그 점을 예상했겠죠?

한 명은 말 걸지 말라고 하고 한 명은 계속 말 걸면서 쫓아다니는 소재가

전 세계 관객들이 둘로 나뉘어 감정이입할 정도로

보편적인 감정이고 치열한 감정이라는 게 재미있습니다.

이상으로 <광화문/경복궁한의원/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진단한의원(종로구 사직로 107)